2013년 6월 25일 화요일

내가 약속해줄께



이젠 괜찮을거야 내가 약속해줄께
오늘이란 선물이 우린 있잖아
이젠 괜찮을거야 내가 약속해줄께
내일이란 희망이 우린 있잖아

비가오는 날이면 가끔 우울해지겠지만
그땐 내가 널 위해 기도 해줄께
창밖을 바라 보다가 문득 떠오르겠지만
그땐 이 노래를 불러봐

이젠 괜찮을거야 내가 약속해줄께
오늘이란 선물이 우린 있잖아
이젠 괜찮을거야 내가 약속해줄께
내일이란 희망이 우린 있잖아




2013년 6월 21일 금요일

누군가 당신을 찾을 때에는

누군가 당신을 찾을 때에는


누군가 당신을 찾을 때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물질적인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위로의 말 한마디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친구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얼굴 한 번 보거나 목소리 들음만으로
기쁨을 얻기 위함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당신을 찾을 때에는
당신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 다른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바로 당신에게서 얻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당신을 찾을 때에는
그 순간 당신은 그에게 세상 모든 것입니다.

누군가 당신을 찾을 때에는
그를 기쁘게 맞아 받아들이십시오.
그를 안음으로써 그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십시오.
그에게 모든 것이 되어 줌으로써
그가 모든 것을 가지도록 해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찾는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되어 주심으로써
그가 모든 것을 갖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찾는 이와 함께 하셨고
함께 함이 곧 당신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려는 아름다운 당신!
예수님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당신을 찾는 이를 품에 안으십시오.

마리아사랑넷 : 수산나수녀님 : 누군가 당신을 찾을때에  에서 퍼옴


누군가가 당신을 찾을때가 있을거에요.
누군가가 당신이 필요할때가 있을거에요.
누군가가 당신을 찾는다느것은 행복이 아닐까요?
전 행복합니다...



2013년 6월 20일 목요일

되찾은 아들의 비유

되찾은 아들의 비유 (루카 15:11-32)
11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12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13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14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15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17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18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25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27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29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30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31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32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난 여기서 누구일까?   아버지, 큰 아들, 작은 아들?  3년전에는 이 비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항상 난 궁금했던것이... 저 형은 뭘 잘못했길레... 불쌍한 형... 불공평하다.. 이런식으로 생각을 했었다.  물런 자비로운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은 대충 쉽게 알수있었다.  그런데도 읽고나면 뭔가 찝찝한 느낌... 나도 형이였으면 무지 열 받았을것이다... 저 아버지를 이해할수가 없었다.. 왜 작은 아들에게만 저리 사랑을 배푸시는지... 죽을 죄를 지은 아들에게..

큰 아들...
아마도 난 저 형처럼 여태껏 살아왔나보다. 그냥 시킨일만 잘하고, 내 일만 충실히 하면 끝. 내가 할일은 잘했으니, 잘 못하는사람들은 내 마음대로 비판하고 그랬을지도...
자세히 읽으보면, 동생이 재산을 어떻게 썼다고는 안나온다. 오직 재산을 허비하였다고만 나온다. 그러나 형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왜 창녀들과 어울렸다고 생각을 했을까? 아마 자신이 그러고 싶어서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행동으로 아무리 잘한듯... 생각과 마음이 다른곳에 있으면 무슨 소용일까?  우리도 자주 그렇게 누구를 쉽게 비판을 하지는 않는지... 아니, 그러하다.

아버지의 사랑...
나도 저렇게 쉽게 용서를 할수 있었을까?  내 자식이 내 돈을 훔처서 다 날리고 돌아오면 난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날마다 "오기만 해봐라" 그랬을거 같다... 그러나, 여기서 그 아버지는 매일 애타게 작은 아들을 기다린다..  사실 매일 기다렸다고는 나오지는 않지만, 그랬을거라고 짐작한다. 왜냐?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 장면이 나에겐 생생히 떠오른다.  매일 아버지는 저 멀리 바라보며 혹시나 싶어서 아들을 기다렸을거 같다.  그러지 않으면 아버지가 작은 아들이 몇년후에 돌아오는것을 멀리서 볼수 없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에게 달려간다. 너무나 기뻐서 기다리지 못하시고 아들에게 달려간다.  난 다시 생각해본다. 언제 내가 저 아버지처럼 기뻐서 누구에게 달려갔나?  생각이 안난다.

Amazing Grace(놀라운 은혜): Arr. Sonja Poorman
부천시립합창단

2013년 6월 17일 월요일

주여 당신 종이 여기 (성가 218번)

천주교 신자로서는 아마 이곡을 모르시는 분은 거의 없을거다.  나 자신도 많이 듣고 좋아하는 성가이다.  그러나 오늘 처음으로... 그 성가의 뜻을 깨닳았다.
저희 수녀님께서 우리 성당에 이종철 신부님께서 특강 하시러 오신다고 저에게 알려주셨다. 우와.. 이종철 신부님..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미사곡이며 많은 성가를 작곡하신분으로 유명하신 분이기에...
갑자기 오늘 아침에 그분에 대해서 좀 알고 싶기에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제일 먼저 읽어본것이 바로 이것이다...



1. 성가 작곡의 동기

이종철 신부


천주교 신자라면 성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성가는 참으로 아름다운 기도요,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시의 성가집인 시편 책을
언제나 손에 들고다니시며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특히 성전에 오르실 때, 아침저녁기도 드릴 때, 최후의 만찬 때,
시편성가를 노래 부르셨다는 성서의 기록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윗 왕이 처음으로 야훼 하느님께 찬양의 성가를 부르고자
가사와 작곡을 직접 혹은 음악인들을 시켜 만든 것이 바로
구약성서중의 시편이요 또 그것이 천주교 성가의 첫 시작이 된 것입니다.

성가의 위대함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모습에서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성가의 내용을 보면 우리인생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 참회와 자비를 비는 기도,
기쁨과 슬픔, 놀라우신 사랑에 대한 감동과 감격, 아픔과 비탄 속의 절규와 호소 등등
한마디로 하느님과 우리 인간사이의 사랑과 나눔, 대화와 손길이 서로 교차하는
생생한 만남이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성가를 작곡하리라고는 감히 생각도 못했던 일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성가를 만들기에는 나 같은 죄인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한 일이요,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제 어머니가 마지막 숨을 가쁘게 몰아쉴 때
넋을 잃고 엄마의 맥박을 꼭 쥐고 멈출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곧 숨과 맥박이 동시에 멈추고 입술이 새파래졌을 때
무슨 영문인지 저는 엄마의 시신을 그대로 둔 채
재빨리 연필과 오선지를 찾아들고 언덕 위의 고향성당으로 달려갔습니다.
엄마의 장례식 때 불러드릴 성가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돌아가신 엄마의 죽음을
애석해하며 울부짖는 동안 장남인 제가 시신 곁을 떠나 없어졌으니 난리가 났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가 아니라 마을사람들은 나를 미쳤다고까지 생각했을 겁니다.
나 스스로도 지금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누가, 왜, 그 순간에 장례미사곡을 만들고자
성당으로 끌고 갔는지 도무지 나 자신마저도 모를 일입니다.
죽어 하늘나라에 가서 주님과 어머니께 물어봐야 대답이 나올 거라 믿고 있습니다.
그때까지도 나는 성가를 감히 만든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봤습니다.
하여간 나는 성당에 올라가 성체 앞에 꿇어 눈물과
콧물을 한없이 흘리며 두어 시간만에 입당성가부터
마침성가 그리고 고별식 성가까지 장례미사곡 한 세트를
번개처럼 만들어 내었고, 4부 합창을 연습하여 (누나, 나, 동생 둘)
장례미사 때 엄마의 영혼을 위해 뜨거운 기도를 드렸으며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성가를 만들게 된 동기였습니다.

그때 내 나이 스무 일곱이었고 신학교에서 쫓겨 나와
여자 중 고등학교에서 음악 교사로 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종철 신부의 성가곡은 한결같이 슬픈 노래요
눈물과 비탄의 성가라고들 많은 사람들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성가 작곡의 시작이 그랬고
또한 한 사제로서 슬프고 외로운 사람들의 벗이 돼야 하기에
앞으로도 나는 그런 성가를 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천국에서 천사들과 함께 지내는 날
나는 그제야 기쁨과 환희, 찬양과 감사의 노래만
전문적으로 만들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엄마의 죽음은 대단한 충격이었습니다.
굳게 믿었던 큰아들은 멀리 외국 유학까지 가서
사제서품 몇 달 앞두고 등산길에서 추락사하여
그곳에 묻혀 버렸고, 형을 대신하여 신부가 되겠다던
저 역시 신학교에서 쫓겨 나왔으니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 되자 뇌의 피가 터져 세상을 떠났으니 말입니다.

나는 종종 엄마생각을 하다보면 성모님 생각이 납니다.
믿었던 외아들이 효도는커녕, 동네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더니
설상가상으로 십자가에 발가벗긴 채,
매달려 죽어가는 꼴을 봐야 했던 그 성모님 말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성모님은 머리의 피가 터지지는 않으셨지요.

그날 제 엄마는 평소처럼 주일새벽미사에 참례하고자
우리 집과 같은 벽을 쓰는 바로 옆에 위치한
언양 성당으로 가시던 길이었습니다.
60회갑을 갓 넘었지만 농사일 하랴, 아이 열둘 낳으랴,
열두 자식 기르는 동안 온갖 병치래 돌보랴,
팔순 노인처럼 늙고 유난히 허리가 꼬부라졌습니다.
특히 두 아들의 비운에 속이 얼마나 상했던지 온몸이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차가운 겨울아침 성당 오르는 계단에서 그만 넘어졌습니다.
마침 성당오던 교우 한 분이 부축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 쉬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제 엄마는 「이 정도 가지고 주일미사를 빠질 수는 없지요」하며
기어이 성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비틀거리며 예물 봉헌을 마치고 돌아 나오다 두 번째 또 넘어졌습니다.
교우들이 놀라며 병원으로 가자고 권유했으나
「영성체를 하지 않으면 주일미사가 되지 않으며
미사에 빠진 거나 마찬가지여요」하며 뇌의 핏줄이 터져
혼수상태에 이르렀는데도 끝까지 참았던 것입니다.
성체를 받아 모시고 나오는 길에 세 번째로 넘어졌습니다.

「십자가의 길」의 세 번째 넘어지신 분을 분명 닮았습니다.
즉시 의사를 불러 치료를 하였지만 이미 때는 지나고 말았습니다.
의사는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다며 가방을 챙겨 떠나고
임종을 지키는 동네교우들은 넋을 잃고
그저 「예수 마리아」를 외워대고 있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달려간 저는 이미 말문을 닫아버리고
숨만 가쁘게 몰아쉬는 어미 품에 머리를 쳐 박은 채 할말을 잊었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딱 한마디 외쳤습니다.
「어머니, 제가 어머니를 죽였습니다.
어머니, 제가 바로 살인자요 범인이요 죄인입니다」라고…
이 절규는 지금도 나의 진실입니다.
아직도 나는 죄인입니다.
죄인이요 불효자의 멍에를 벗기 위해 그 뒤 저는 수십 년을 몸부림쳤고
사제가 되는 것이 유일한 효도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으며, 피눈물 끝에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비록 부모가 다 돌아가신 뒤였지만 천국에서 함께
기뻐하심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참 효도는 부모 죽은 다음에야 할 수 있는 것이구나」라고
저는 자주 강론 때에 되풀이합니다.
어머니의 죽음이 곧 제가 성가를 작곡하게 된 동기요,첫 시작이지만
그 뒤로도 여러 번 포기의 기회가 있었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성가작곡의 계기가 이어졌으며 지금은 제 어미가 하늘나라에서 내려주신
은총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또 한번 나를 멍청하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형제 중에서도 제일 못생기고 제일 병약자며, 제일 바보스런 여동생 하나가
수녀원을 간다고 나설 때였습니다.
엄마 돌아가신 뒤 몇 개월이 안 된 때라 아버지는 홀애비가 되어
여동생이 그나마 돌봐 드려야 할 상황이고 그보다도 더 근심스런 일은
저렇게 못난 아이가 수녀원에 가서 필연코 몇 달이 안 되어 쫓겨올 게 틀림없는데
이걸 어쩌나 하며 당황할 때였습니다.

평소에도 오빠로서 여동생에게
「너는 안돼 너처럼 병치레로 자란 아이는 수녀가 될 수 없어」 라며
여러 번 만류 해왔지만 바로 내일 수녀원 입회하러 간다니 이제 더 이상
말릴 수도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나는 여동생 방에 들어가 하염없이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 있었습니다.
본당신부님께 고별인사 드리러 나간 사이 별의별 생각을 다하고 무엇보다도
저 못난 아이가 수녀원생활에 배겨나지 못하고
쫓겨 나오면 어떡하나싶어 여간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그 불안은 곧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주님, 당신은 하시고자 하시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오니
제발 저 못난 아이를 지켜주십시오」 라고…
그리고 몇 개월 전 돌아가신 엄마의 영혼에게도
기도 해달라고 울먹이며 종알거렸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책상아래에 눈이 갔습니다.
휴지통속에 깨알같은 작은 글씨의 종이쪽지들이 찢겨져 있었습니다.

몇 개를 꺼내어 펴 보았습니다.
「주여 당신 종이 여기 왔나이다. 하얀 소복 차려 여기 왔나이다.」라는
글귀였습니다.
불살라 버리려고 찢어둔 일기였습니다.
저는 갑자기 성가를 만들고 싶은 충동이 생겼고,
그 쪽지들을 차례로 배열해두고 그 위에 곡을 부쳤습니다.

단숨에, 불과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특별한 점은 동생을 주님께 맡겨드리는 애절한 기도로 시작하여
수개월 전 돌아가신 엄마생각 그리고 그 당시 두 번째 신학교에
재입학 했다가 이제는 사제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불확신으로
신학교에서 뛰쳐나온 뒤라 내가 못하는 성스러운 성직을 동생이 대신하게 해달라는
주님께의 호소가 함께 상승작용을 한 점이 유달랐습니다.

떠나는 날 아침, 동생의 봇짐에 끼어주며
오빠의 기도가 담긴 노래이니 시간 날 때마다
또 힘들고 어려울 때 불러보라 권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 한달 쯤인가 여동생으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오빠, 첫날은 그 노래를 부르며 혼자 울었지만,
다음날은 입회동기생들이 모두가 울먹였으며,
그 다음날은 모든 수녀님들이 흐느꼈습니다」라고…

나는 지금도 부지런히 살아가는 동생수녀를 보면서
이 성가의 은총의 힘이라 생각해봅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떨 때 동생수녀를 보면
버려진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이다.」라는 성서 말씀이 떠오릅니다.

하여간 제일 못생기고 제일 병약하며 제일 바보스런
아이가 어쩜 우리 형제 중에 제일 건강하고
제일 똑똑하며 제일 활동적인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는 이럴 때 “신앙의 신비”라고 밖에 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가톨릭성가 218번 / 주여 당신 종이 여기

작곡 : 이종철 신부님 /

주여, 당신 종이 여기 왔나이다
오로지 주님만을 따르려 왔나이다

십자가를 지고 여기 왔나이다
오로지 주님만을 따르려 왔나이다

파란 풀밭에 이 몸 뉘여 주소서
고이 쉬라 물터로 나를 끌어주소서

주여 당신 품안에 나를 받아주소서
내 쉴 곳 주님의 품 영원히 잠드렵니다

주여, 당신 종이 여기 왔나이다
주님의 부르심에 오롯이 왔나이다

하얀 소복 차려 여기 왔나이다
한평생 주님 함께 살고파 왔나이다

파란 풀밭에 이 몸 뉘여 주소서
고이 쉬라 물터로 나를 끌어주소서

주여 당신 품안에 나를 받아 주소서
내 쉴 곳 주님의 품 영원히 잠드렵니다...




읽으면서 내 눈에는 눈물을 참을수가 없었다.  저절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계속 읽어 나갔다...  설마 주님께서는 나를 통해서도 정말 그런 기적을 이루시는지....  이 보잘것없는 나를... 음악이란 기초도 모르는 나를...  그러나 이런 글을 읽을수록, 점점 더 확신해진다.  나는 주님의 종이다...  내게 주어진 소명을 따르러 난 길을 나섰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지만서도.
이 글에서 이종철 신부님께서 체험하신 번개처럼 곡을 만드신것을 나도 똑같이 체험을 해봤다.  아마도 이종철 신부님께서도 이 곡을 자신이 작곡을 한시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당신을 통해서 곡을 주셨으리가 믿을겄이다.  그때에는 내 자신이 아닌듯 하다. 곡을 만드는것이 아니라 그냥 받아적는 그런 기분...  내가 이종철 신부님처럼 유명한분이 되고싶다는것이 아니다.  오로지 단 한분이라도 내가 이 길을 선택함으로써 도움이 되었다면, 바로 그것이 주님이 원하셨는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오늘도 한걸음을 걷는다.



2013년 6월 14일 금요일

평화의 기도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또는 평화를 구하는 기도로 많이 알려져있는 기도이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기도이다.  어쩌면 우리는 여기서 하나도 실천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평화가 바로 이런것이라면... 우리 마음에는 평화가 있을수 있을까...  아마 우리는 평화라는 뜻도 모르고 평화를 빕니다라고 미사때에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노력이 필요할뿐... 아마 주님께서는 완벽한 우리를 기대하고 계시는것이 아니라 조금이나마 노력을 할려는 우리를 바라고 계실지도...  

보잘것 없는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시길... 오늘도 간절히 주님께 비나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평화의 기도곡 중에 한곡...



2013년 6월 10일 월요일

친구

*나이가 들수록.....*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좋은 친구가 
더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만나기 전부터 벌써 가슴이 뛰고 
바라보는 것에 만족해야하는
그런 사람보다는...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편안하게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
더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길을 걸을때
옷깃 스칠것이 염려되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어야하는
사람보다 어깨에 손하나
아무렇지 않게 걸치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더
간절해질 때가 있습니다.

너무 커서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서 자신을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만드는 사람보다는...

자신과 비록 어울리지는 않지만
부드러운 美笑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더 절실해질 때가 있습니다.

말할수없는 사랑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지고
하고픈 말이 너무 많아도...

상처 받으며 아파할까봐
차라리 혼자 삼키고 말없이
웃음만을 건네주어야 하는
사람보다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
받을수 있는 사람이
더 절실해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차마 입을 벌린다는 것이
흉이 될까 염려 되어
식사는 커녕 물한잔 맘껏
마실 수 없는 그런 사람보다는...

괴로울 때 술잔을 부딪칠수있는 사람.....


밤새껏 주정을 해도 다음날 웃으며
편하게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더 의미있을 수 있습니다.

어쩜 나이가 들수록........
비위 맞추며 사는게 버거워
내 속내를 맘편히 털어놓고
받아 주는 친구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램 탓이겠지요...??? 



사회복지법인 대건 까리따스에서 퍼온 글




그런 사람도 필요하지만 그런 사람이 되어줬으면 합니다...

2013년 6월 6일 목요일

주님의 기도

주님의 기도는 참으로 중요한 기도라고 생각한다. 우리 신앙의 삶을 아주 간단하게 모든것이 포함되어있는 기도인거 같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주님께 기도를 드렸다.... 제가 이 기도를 작곡을 하고싶다고.
우리 본당에서는 이 중요한 기도를 미사드릴때 성가책 387장 버전으로 얼마나 부른지 모른다.  난 아무것도 모를때에 세례를받고, 주님의 기도는 그 버전밖에 없는줄만 알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다른 미사곡의 주님의 기도가 아주 많던데...
그래서 이곡 저곡 다 들어봤다.  한참 주님의 기도만 찾아 해매었다.
재즈 버전, 롹 버전, 전통 국악 버전... 참 여러가지의 곡들이 있다.
그래도 나만의 욕심이였는지.... 난 주님께 제 버전을 부탁했다.
어느 하루... 주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이럴때는 내가 작곡을 하는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것을 내가 그냥 따라 부르는 기분이다.
치지도 못하는 피아노앞에서 젓가락 손가락으로 띵가띵가 처보았다.
난 악보도 쓸줄몰라서 그냥 그자리에서 혹시나 잊어먹을까봐 계속 반복을하며 불렀다.
아직 악보도 없는 나의 기도... 주님의 기도...





아멘~

2013년 6월 5일 수요일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

난 한국 프로그램을 거의 보질 않는다.  하지만 주위에서 누가 어떤 프로그램을 보면서 좋았다하면 호기심에 한번씩 본다.

남자의 자격에서 나온 청춘 합창단의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를 보았다.  보았다고 표현을 하기보단 느꼈다....






동영상을 보지않고, 청춘 합창단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이곡을 들려주면 뭐라고 할까?
그냥 들어보면 썩 좋은 합창 실력도 아닌 평범한 합창단의 노래다.  별 감동이 없을거 같다.
동영상을 같이 보면서 들으면.. 어~ 아주 나이 많은분들이 부르시네... 하면서 다시 생각을 해볼수도 있을거 같다.  그런데 가끔식 보여주는 관객들의 눈물들...

자세히 가사를 읽어보면...

사랑이란는 이름을 더하여  - 김태원 -

삶이란 지평선은 끝이 보이는 듯해도
가까이 가면 갈수록 끝이 없이 이어지고
저 바람에 실려가듯 또 계절이 흘러가고

그리움이란 그리움이라는 이름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
서로를 간직하며 영원히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기에

기다림이란 기다림이라는 이름에
소망이라는 이름을 더하여
누군갈 간직하며 영원히 기억하며
이루어가는 거기에

바람에 실려가듯 또 계절이 흘러가고
눈사람이 녹은 자리 코스모스가 피었네
또 다시 가려므나
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
세월아 가려므나 아름답게
다가오라 지나 온 시간처럼

가려므나 가려므나 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

뭐 그리 눈물을 흘릴정도의 가사는 아닌거 같다. 좋은 글이지만서도... 
김태원이 이곡을 쓰게된 계기는...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지금껏 말 하지 못한 이야기를 말 하고 싶었다" 라고 했다.
그러니 가슴이 그냥 문어저버린다.
그리고 이곡을 청춘합창단이 부른다...

우리는 눈과 귀로 많은것을 미리 판단한다.
보이는것과 듣는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곡을 들으면서, 보면서, 느끼면서...
눈물이 글썽하지 않으면, 아직 사랑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음악이란 잠시 눈을감고 귀로 듣는것이 아니라... 가끔식 마음으로 들어야한다.

"누군가를 간직하며 영원히 기역하며".....








2013년 6월 3일 월요일

캔디

한국에서 어릴때 보던 만화 캔디..  지금은 내용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주제곡은 머리속에 남아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들을
푸른하는 바라보면 노래하자
내이름은 내 이름은 내이름은 캔디
나혼자 있을땐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속의 나하고
웃어라 웃어라 웃어라 캔디야
울며는 바보다 캔디캔디야~




지금 가사를 가만히 보니... 정말 이런가사를 어린 아이들이 불렀다니...
한국사람들의 특징인가?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울어?
거울속의 나하고 얘기를 해?

보면 우울증에 걸린 증세인거 같다.
신경과에 치료를 받아야하는..

그것은 옛날이라고 치자...
우리 아이들은 둘리를 많이 봤다.
그럼 둘리 주제곡 가사는?





보고픈 엄마찾아 다같이 나가자..

외로운 둘리는 귀여운 아기공룡...


캔디많금 심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에게 외롭고 쓸쓸한걸 보여준다.
한국인의 특징인가?


2013년 6월 1일 토요일

아버지 선예

아버지...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것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난 우리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렀던 기억이 없다.  어느것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그냥 아버지란 말 자채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되는지 생각해본다.

난 회사에서 많은 아빠들은 본다.  그들은 회사일들을 열심히 하다보니 누구의 아빠가 아니라 돈벌이 해주는 존제가 된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회사일에 파무쳐있는것을 자주본다. 물런 그런 사람들은 출새할 가능성이 높고 회사에서 알아준다. 

난 돈벌이 해주는 사람보단 누구의 아빠가 되고싶은것이 더 중요하다.  매일 가족이랑 저녁을 같이 하는것을 아주 중요시 여긴다.  아이들이 너무 빨리 자란다.  곧 있으면 우리 한 가족이 저녁을 같이 먹는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도 자주 든다.  그런생각이 들면 들수록 지금 이시간이 더욱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나도 이젠 나이가 들었는가 보다.. 이런 생각들을 다 하니...

운전을 할려면 시험도 보고 면혀증을 따야하는데... 부모가 될려면 아무나 될수있는거 같다.  내가 진짜 아버지가 될수있는 자격이 없는거 같은데...  아이들과 같이 철 들어가면서 아빠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다보니 우리 아버지도 나이가 많이 드셨다.  어느세 그렇게 빠른 세월이 흘렀는지....  




벌써 이 공연 간지도 1년이 지났네...   여기서 내 얼굴 나와서 한참 유명했었는데 ㅋㅋㅋ
힌트... 2:00 에서 2:30 사이에 나옴 ^^